
AI에 묻고 약국으로… ‘디지털 자의적 판단’이 불러올 의료 재앙
— 현장 약국·전문가 인터뷰와 사례로 본 현실
AI가 ‘가짜 전문의’가 된 사회
최근 환자들이 병원에 가기 전 스마트폰을 켜고 생성형 AI에게 증상을 묻는 풍경이 일상이 되고 있다. AI의 답변을 근거로 약국에서 일반의약품(OTC)을 직접 구입해 복용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의료 현장에서는 새로운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AI 조언에 의존한 60대 환자
서울에 거주하는 62세 A씨는 혈압약과 혈액 응고 저해제를 복용 중이었다. 무릎 통증이 심해지자 AI에게 증상을 입력했고, “NSAIDs 성분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A씨는 약국에서 해당 성분이 포함된 진통제를 구입해 복용했지만, 며칠 뒤 갑작스러운 위장관 출혈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의료진은 “기존 약물과의 상호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복용이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김지현 교수(신경과, 이대서울병원)
“AI는 확률적으로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들어낼 뿐, 환자의 혈액 수치나 신장 기능 같은 개별적 상황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잘못된 임상 결과나 허위 용량을 사실처럼 제시하는 ‘할루시네이션’은 의학 분야에서 치명적입니다.”박민수 약사(서울 강남구)
“환자들이 약국에 와서 ‘AI가 추천했다’며 특정 약을 바로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OTC 제품에는 공통 성분이 중복돼 간 독성 위험이 큽니다. 약사의 복약 지도가 무시되는 순간, 안전장치는 사라집니다.”이은영 내과 전문의
“AI의 조언으로 진통제를 복용하면 당장의 통증은 가려지지만, 암이나 뇌혈관 질환 같은 중증 질환의 신호를 놓칠 수 있습니다. 이를 ‘가면 효과’라고 부르는데, 결국 골든타임을 놓쳐 치료가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 시내 약국을 직접 찾아보니, 환자들이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며 “이 약 주세요”라고 지목 구매하는 장면이 흔했다. 약사가 약력 관리와 복약 지도를 위해 질문을 던져도 “AI가 다 확인해 줬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약사들은 “전문가의 직관과 경험이 배제된 투약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다”고 경고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정리해 건강 정보를 제공하는 훌륭한 도구다. 그러나 생명과 직결된 ‘운전대’를 맡길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AI의 답변은 참고용에 불과하며, 실제 약물 선택과 복용은 반드시 의사와 약사의 필터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AI는 차갑고 평면적인 지식을 제공한다. 그러나 환자의 얼굴빛을 살피고, 손을 잡아보고, 어제 먹은 음식까지 물어봐 주는 전문가의 한마디가 때로는 수조 개의 데이터를 가진 AI보다 더 정확한 처방이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