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 존엄사>
글: 박기환
사람들은 오래 사는 것을 축복이라 생각하고 오래 살려고 애를 쓰지만, 나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태어났으면 죽는 것이 순리이다. 어떤 철학자가 말 했듯이 인간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인 것이다. 오래 산다! 일견 좋아 보이지만, 꼭 그럴까? 장수하고 있는 주위의 어른들을 보면 한결 같이 말씀 하신다.
‘언제인가 부터 사는게 별로 의미가 없어. 해가 뜨니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고, 해가 지니 하루가 지나는 것이고….. 살아 있으니 그냥 하루 하루 보내는 것이지 뭐.’ 백세를 바라보도록 건강을 유지하고 독립생활을 하시는 우리 장인어른의 말씀이다.
하물며 몸이 편치 않아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어른들의 상황은 더 참담 할 것이다. 죽지도 못하고, 살기도 힘들고, 살아도 숨 쉬고 있다는 것 밖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미래의 내 모습을 그려 보며 나는 ‘생의 자기 결정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는 했다. 어느 날 스위스로 갈 수 있도록 미리미리 준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고.
그런 생각을 갖고 있던 나에게 이 책의 발간 소식에 귀가 솔깃 해져서 구입해 읽었다. 타이완의 재활의학과 의사인 비류잉씨가 척추소뇌실조증 Spinocerebella Ataxia라는 희귀 유전질환을 앓던 자신의 어머니가 스스로 곡기를 끊고 마지막 가는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실행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가족으로서, 의사로서 느낀 죽음과 의료제도에 대한 생각들을 쓴 글이다.
다시 한번 죽음, 특히 ‘잘 죽는 것’이 쉽지 않을 뿐더러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를 미리미리 해야 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나중에 더 늙어서 병원에 입원해 갖가지 줄들을 달고 고생하다 쪼그만 병상에서 세상을 떠나는 것은 피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자신이 어느 시점에 곡기를 끊는 것이 생의 자기 결정권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 조차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고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먼저 나 스스로가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며 적절한 시점에 나의 생각을 가족들에게 알리고 모두가 동의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 스스로 절제하고 건강을 잘 돌보는 것이 필요하고, 이에 더해 사람들이 잘 죽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제도적인 개선이 정말 필요하다. 지금은 의료의 촛점이 살리는 데에만 맞춰져 있다면, 잘 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의료도 분명 필요할 텐데, 지금은 그런 생각들이 별로 없는 듯 하다.
제작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나는 죽음이 내 앞에 성큼 다가섬을 느끼고 있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피하고 싶지도 않다. 사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매우 제한적이다. 나는 그 시간을 완전 연소하는 삶으로 살아가며 잘 보내고 깔끔하게 가고 싶다.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족: 존엄사에 관한 입법의 측면에 있어서 타이완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 있는 것 같다. 호스피스 제도도 훨씬 잘 발달되어 있는 것 같고. 김윤 교수가 국회의원이 되셨으니 제도의 발전에 기대를 좀 해도 되려나?
비류잉 지음, 채안나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