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둔다
이성선
마당의 잡초도
그냥 둔다.
잡초에 누운 벌레도
그냥 둔다.
벌레 위에 겹으로 누운
산 능선도 그냥 둔다.
거기 잠시 머물러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
내 눈길도 그냥 둔다.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 (메이븐/2019)
아무렇지 않게 태초의 도면을 찢어발기며 사는 우리는
새로운 걸 쫓는 데는 능숙하나 자연을 그냥 놔두는 데는 서툴다.
보는 것만으로 시름을 달래주던 산 능선은 고층 아파트에 찢겼고
걷는 것만으로 행복이던 오솔길은 아스팔트가 점령했다.
어쩔것인가
쾌락은 늘 영혼보다 앞서서 와
급히 달리는 것만 배웠지 삶을 관조할 줄 모르는 우리는
건물주가 되는 게 이상적인 꿈이 돼버렸고
다세대 빌라 말고 아파트에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 같고
콘크리트 네모 벽에 갇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투잡 쓰리잡 뛰면서도
도시에 살아야 큰 거 한방의 기회가 올 것 같은걸.
그렇더라도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생각이란걸 하고 살자
다름 아닌 나에 대한
나를 살려주는 자연에 대한
제아무리 새로운 도면이 훌륭한들 태초의 것보다 아름답지 않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므로····
안성우
시인/경제학박사
㈜한라엠앤디 대표이사
유한대학교 경영학부 겸임교수 역임
계간 『인간과 문학』등단
시집 『가면의 시대』
에세이 『5무 인생의 평범한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