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정세훈
녀석이 나보다
부잣집 아들이었다는 것도
학업을 많이 쌓았다는 것도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도
그 어느 것 하나 부럽지 않았다
다만, 녀석이
내 끝내 좋아한다는 그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한 그녀와
한 쌍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적
난 그만
녀석이 참으로 부러워
섧게 울어버렸다
『우리가 이 세상 꽃이 되어도』(푸른사상 2018)
숫기가 없어서라기보다는 그녀 앞에 멋진 사람으로 당당하게 나서고 싶어서 세월 강을 건너는 동안 가슴에 접어둔 사랑,
이 정도면 됐다 싶어 주변을 둘러보면 부족하기만 하고 밤을 낮 삼아 채워도 표도 안 나는 채움에 지쳐 있을 때 끄집어내 본 추억 한 장
그 속에 설움이 한 움큼 기다리고 있다
가난을 극복하려는 사람들끼리 아귀다툼을 벌이는 동안 돈 세기에 바쁜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되어 가고 가난은 여전히 가난으로 남는 지금
젊은 날 가난이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알았다면 그때 그 사랑 지켜냈을까! 그랬다면 가난해도 행복했을까?
목숨줄을 쥐고 있는 물질이라 한들 살아 있을 때만 유용하거늘 위대한 캣츠비처럼 영혼을 쥐고 있는 사랑은 물질에 치이며 언제까지 미래로 가는 과거의 애를 태울지
계절을 건너는 뒷산에 생강나무 꽃이 설레게 웃는다.
안성우
시인
경제학박사
계간 『인간과 문학』 등단
시집 『가면의 시대』
에세이 『5무 인생의 평범한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