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증후군을 방치하면 당뇨병과 고혈압은 필연적
40대 후반 양 씨는 건강검진을 받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는 진단을 받았다. 높기는 해도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해서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곧 운동도 시작하고 음식 조절을 하면 금방 좋아질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런데 얼마 후 국민건강보험에서 우편물이 도착했다. 열어보니 ‘검진 결과 1~2개의 건강 위험 요인이 확인되어 관련 자료를 제공하오니 건강관리에 활용하시기를 바랍니다.’라는 안내 문구와 함께 대사증후군과 관련된 설명이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국민건강보험에서 보낸 우편물의 내용은 결국 ‘대사증후군’이니 조심하라는 얘기였다.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대사증후군을 심각한 질병이라고 생각하 지 않았다. 양 씨 자신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 대사증후 군이란 진단이 나왔어도 건강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피곤 할 때 가끔 눈 아랫부분이 떨리기는 했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대사증후군’이란 진단을 받으니, 마치 큰 병에라도 걸린 듯 기분이 좋지 않았다. 국민건강보험에서 괜히 대사증후군 운운하면서 겁을 주는 것 같아 화가 나기도 했다.
대사증후군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생명을 유지하고 활동하기 위해 음식물을 섭취해 필요한 물질을 합성하거나 분해하면서 에너지를 얻는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부산물이나 노폐물이 생기는데, 이를 몸 밖으로 배출해 건강을 유지한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물질 대사라고 하는데, 대사에 이상이 생기면 여러 가지로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다.
일시적인 대사 장애는 큰 문제가 없지만 대사 장애가 만성적으로 지속되면 당뇨병, 비만, 고혈압, 고지혈증, 요산증, 지방간, 심근경색, 죽상동맥 경화증 등의 질병이 발생할 수 있다. 그것도 여러 질병이 한꺼번에 나타날 수 있는데, 이를 ‘대사 증후군’이라 한다.
대사증후군을 진단하는 기준은 간단하지 않다. 다음 5가 지 항목 중 적어도 3개 이상이 일치했을 때 비로소 대사 증후군이라 진단한다.
① 중심비만(central obesity) : 남성은 허리둘레 102cm, 여성은 88cm 초과 (한국인 및 동양인의 경우 대개 남성 의 경우 허리둘레 90cm, 여성은 80cm 이상)
② 중성지방(triglyceride) : 150mg/dL 이상
③ 고밀도 콜레스테롤(HDL - cholesterol) : 남성의 경우 40mg/dL 미만, 여성의 경우 50mg/dL 미만
④ 혈압 : 수축기 혈압이 130mmHg 이상 또는 이완기 혈 압이 85mmHg 이상인 경우
⑤ 공복혈당 : 100mg/dL 이상 혹은 당뇨병 치료 중
양 씨의 경우 저밀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지만, 몸에 좋은 고밀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은 것 외에는 해당 사항이 없으니 엄밀한 의미에서는 대사증후군이라 보기 어렵다. 그렇지 만 5가지 기준 중 어느 한 가지라도 일치하면 향후 대사증후 군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크니 조심하는 것이 좋다. 또한 한 연구에 따르면 대사증후군의 5가지 인자 중 1~2개만 가지고 있어도 정상인보다 심장병이 발생할 확률이 1.5~2.3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사증후군 인자 중 일치하는 항목이 몇 개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느 한 가지라도 일치하면 이미 대사증후군이 시작된 것이라 간주하고 건강관리를 시작하는 것이 안전하다.
뇌졸중, 암, 심혈관질환을 일으키는 주범
한국인의 대사증후군은 해를 거듭할수록 급증하는 추세다. 2012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40세 성인의 대 사증후군 유병률은 24.8%, 66세 성인은 40.8%로 나타났다. 40세 이상의 성인 4명 중 1명, 66세 이상의 노인 10명 중 4 명이 대사증후군이라는 얘기다.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 지선하 교수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2005년도 기준으로 국대 대사증후군 환자가 1천50만 명을 돌파한 것으로 집계되었다고 한다. 이후 매년 대사증후군 환자가 급증하는 추세이니 지금은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2005년보다 훨씬 환자 수가 많아졌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대사증후군은 즉각적으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허리둘 레가 기준치를 초과해 복부비만이라고 해도 당장 문제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혈압이나 혈당,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수치가 정상보다 높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 자체로는 이렇다 할 심각한 증상을 느끼지 못한다. 그럼에도 대사증후군을 우려하는 이유는 대사증후군이 각종 성인병을 비롯한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질병을 일으키는 주원인이기 때문이다.
대사증후군을 방치하면 당뇨병과 고혈압은 필연적으로 생긴다. 대사증후군 초기에는 당뇨병 전 단계와 고혈압 전 단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상 수치보다는 높지만, 당뇨 병이나 고혈압 진단 수치에는 미치지 못하는 경우다. 이 단계에서는 식이요법과 운동을 꾸준히 병행하면 고혈압이나 당뇨병의 원인이 되었던 불균형을 비교적 쉽게 바로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별다른 증상이 없다고 무시하면 십중팔구 고혈압이나 당뇨병으로 진행하고, 이미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앓고 있던 사람들은 더 심해질 위험이 크다.
대사증후군의 위험성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혈당이 높고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다는 것은 혈액에 당과 지방이 많아서 끈적거린다는 의미다. 혈액이 끈적거리면 당연히 혈액순환이 잘 안되고 당과 지방을 비롯한 노폐물이 혈관에 쌓이다 보면 혈관이 막히기 쉽다. 대사증후군이 있을 때 심혈관 질환이 생길 위험이 크게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혈관 질환의 위험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막히면 심근경색으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고, 뇌로 가는 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역시 생명을 잃거나 심각한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대사증후군이 있을 때 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은 약 3.5배 이상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심혈관계 질환과 더불어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암도 대사증후군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대사증후군이 있을 때 암이 발생할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암 중에서도 특히 대장암, 유방암, 신장암, 전립선암, 식도암 등이 대사증후군과 관련이 깊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 의과대학의 도널드 개로 박사는 대사증후군이 있는 사람을 포함한 1천200명과 대장암 병력이 있는 350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를 분석한 결과, 대사증후군이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에 비해 대장암 발병률이 평균 75%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대장암은 대사증 후군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식습관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장암과 대사증후군이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도널드 개로 박사가 이를 입증한 셈이다.
대사증후군은 유방암 발생 위험도 높인다. 미국 알버트 아인 슈타인 의과대학의 제프리 카바트 박사는 50~79세의 여성 4천888명을 대상으로 8년에 걸쳐 주기적으로 대사증후군 검사를 한 결과 조사 기간 중 유방암으로 진단된 여성은 그 로부터 3~5년 전에 대사증후군이 나타난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또한 유방암 발생률도 대사증후군이 없는 경우보다 2배 이상 높았다고 한다. 특히 대사증후군 조건 중 최저혈압 인 이완기혈압이 높으면 유방암이 위험이 2배, 중성지방이나 혈당이 높으면 각각 1.7배 가량 유방암 발생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간암과 관련된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 연구진 은 지난 1994~2005년간 간세포암종(HCC)이나 간내담관암 종(ICC)으로 진단된 65세 이상 환자를 대상으로 간암과 대사증후군과의 관련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간세포암종 발생 환자 중 37.1%, 간내담관암종의 경우 29.7%가 대사증후군 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대조군의 17.1%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치다. 특히 HCC 환자의 42.9%와 ICC 환자의 43.3%는 대사증후군 외에는 다른 위험 요인의 병력도 없었다. 결국 대사증후군이 HCC의 위험을 2.13배, ICC 위험을 1.56배 높인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대사증후군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당뇨병, 고혈압, 뇌졸중, 심근경색, 암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불러온다.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질병이 아니니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안심하지 말고, 조기에 대사증후군을 치료하도록 노력 해야 한다.
이재철 (대한기능의학회 고문, 반에이치클리닉 대표원장)
출처 : 엠디저널(https://www.mdjournal.kr)